5월 23일
집사람차를 타고 프놈펜 공항으로 향했다 도중에 비가 계속 내린다. Myanmar Airways 6:40 PM 출발인데 6시 부터 boarding 하라고 재촉하더니 6:20 PM에 이륙했다. 미얀마는 캄보디아보다 30분 시간이 늦다. 미얀마를 보고 싶었다. 어디로 인도하실까 궁금하다. 오라는 사람도 없었으나 이제 미얀마에서도 선교해야 겠다는 생각에 탐사를 시작했다. 황량한 가운데 내버리지 마옵시고 윤택하고 풍성한 가운데로 이끄시기를 간구했다. 마침내 양곤공항에 왔다. Andrew Kam 목사부부 그리고 Life B-P. Singapore 에서 온 선교부 소속 3명이 나와있었다. 우리는 각자 일정이 달랐다.
5월 24일
버스 종합 터미날에서 혼자 버스를 타고 탐사를 시작했다. 버스안에서 여권 검사를 했고.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알 수가 없다. 온통 버마 말로만 되어있고, 남자들도 긴치마를 두르고 여자들은 얼굴에다 허연것을 묻혀 놓았고, 볼,이마 코에다
발라 놓았다. 차가 보까띠리 정류장에 섰다. 종점인지 다내린다. 둘러보아도, 숙박할 곳이 없다. "까로"로 간다고 하니 대합실로 인도하고선 오늘 표는 매진되었다고 했다. 호텔을 물으니 가격이 100불이라하고 외국인은 게스트 하우스에 묵을 수 없다고 해서 다시 대합실에 가서 오는 차에 빈자리가 있으면 타고가려고 했다. 후덥 지근한 대합실에 앉아있으니 꼬마 어른 할 것없이 TV에 열중하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가격 차별이 철저하다. 버스가 왔다. 티켓에는 "No Seat"라고 쓰여있어 통로의 작은 의자에 앉았다. 조금가니 꼬불꼬불 산길이 나온다. 한참을 가다가 잠들었는데 나보고 내리라고 한다. 나와 다른 사람한 사람만 내렸다. 사방이 깜깜하다. 미얀마도 전력사정이 좋지 않다.
5월 25일
차에서 내릴때가 새벽 1시쯤 되었는데 겨우 헤매다 Winner Hotel 을 찾았다. 호텔은 잠겨있었고 내부는 깜깜했다. 문을 두드리니 청년이 후래쉬를 들고나온다. 가장 싼방($10)에 체크인하고 방은 안내 받았는데 방이 깜깜하다. 후래쉬를 달라했다. 아침 5시나되야 전기가 들어온다고 했다. 방안엔 아무것도 없다. 샴푸, 칫솔, 치약, 화장지 타월 하나도없다. 샤워기를 틀었더니 뜨거운물은 잘 나온다. 아침에 가져온 표백 빨래 비누로 옷을 빨았다. 거리를 나가 상점을 보니 상품이 빈약하고, 소년 중들이 많이 보인다. 지도를 가지고 침례교회를 찾아가 Rev. SAW AH BE를 만났다 그는 1978년 양곤에서 신학을 한후 이곳에서 목회를 34년간 해오고 있다고 했다. Karen족 출신으로 봉급은 30,000 켑 을 받는데 하나님이 공급하셔서 100만 켑의 사역을 할 수 있다고 했다. 37불 정도의 봉급이다. 고아들을 50명 이상 데리고 공부시키고 있는데, 믿음으로 Ask 하고 손,발, 머리로 Seek하고 행동으로 Knock 하면서 이런 사역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미얀마 사람들은 캄보디아 사람보다 Wild했다. 동작도 더 민첩하고 인터넷 샵은 전기가 나갔는지 조그만 발전기를 밖에 내놓고 돌리고 있다. 1시간에 1000K(Kyat) 야후를 연결하니 금방접속된다. 명지교회, 효석, 집사람, 복용교회, Limpin 에게 email 을 보내니 딱 1시간이 걸렸다. 이곳은 12월엔 눈도 내린다고하고 높다란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1000명 규모의 고등학교가 2개있고 돌아다녀보니. Catholic church가 잘지어져 있고 Anglican Church도 잘 지어졌고 넓은 대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잡초가 많고 인적은 안보인다. 네팔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이야기 해보니 이도시에 네팔인이 150가구 정도 산다고... 호텔에 들어와 오늘은 전기가 몇시에 끊기냐고 물으니 11시라고 했다. 내일은 따웅주로 간다.
5월 26일
아침 일찍 부터 발전기를 튼다고 시끄럽다. 가방을 끌고나가 버스를 기다렸다 마을 버스같이 생긴것이 "땅쥐"를 간다고 한다. 버스 바닥은 나무로 되어 있었고 좌석은 좁았다. 그걸 타고 HEHO 공항을 지나 Innie Lake로 들어가는 교차로에서 내렸다. Motor Taxi가 와서 땅쥐 까지 5000K 라고 해서 그것을 안타고 중형 트럭을 개조해 만든 것에 올라탔다. 15명 정도가 앉을 수 있었는데 500K 을 냈다. 이곳 "수에냐옹"에서 급한 경사길을 꼬불꼬불 계속올라가니 산에는 소나무가 크고 많았다. 경치가 좋다. 높은데서 바라보니 밑에 있는 도시가 큰 도시였다. 한참 올라가니 "Tonggyi the city of Shan Province, Warm and Cordial Welcome" 이라고 써 붙인 큰 대문이 나온다. 다운타운에 도착하니 매우 어수선하고 혼잡하다 일단 식당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가방을 끌고 어디로 가야하나 생각하며 혼잡한 거리를 걸었다. 큰 사거리에서 가방을 세워놓고 땡볕아래 그냥 서 있었다.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어디로 갈 것인가. 그때 Inlie 가 생각났다. 그래 아까 차를 탔던 수에냐용으로 다시 가보자. 거기서 Inlie 가는 차를 타면 될거야. 거리에서 파는 옥수수(200K) 하나 사서 까먹고 잭프룻(100K) 어치 사먹고 메추리알 3봉지(500K) 사서 아까 탔던 그 중형트럭을 탔다 20분 만에 사람이 다차서 출발했고 수에냐옹에서 다른 트럭으로 갈아타고 1000K를 내고 입장료 5불을 내고 인레호수에 도착했다. 얼마를 걸으니 "Good Will Hotel"이 나와 $10(조식포함)에 체크인하고 교회를 찾아나섰다. 비가 내려서 호텔에서 우산을 빌려 교회가 있다는 곳을 갔다. 침례교회를 갔는데 61세의 Rev. Sai Htun Khaing은 샨족이고 만달리 Theological Cellege 를 졸업하고 이곳에서 사역한지 15년이 되었고, 교회는 20년이 넘었다고하고 인레지역 유일한 교회라고 했다. 캄보디아에서 가져온 The Way to the Heaven 영문판 전도책자를 주었다. 처와 딸들은 치앙마이에 있고 아들은 미국에서 engineering을 공부한다고했다. 그곳을 나와 좀 걷다 호텔에 왔다. 많은 불교사원들 영육간에 피곤했다. 빨래를 하는데 거품이 잘 일지 않는다.
5월 27일
오늘은 주일. 10시에 예배가 있어 그 침례교회로 갔다. 아마 사도신경을 외우는 것 같았고 아는 찬송가를 부른다 "Come thou Almighty King", "Sweet Hour of Prayer" 기도는 10분정도 하고 어린이들이 나와서 찬양하고 헌금 때는 청년들이 찬양하는데, 목소리가 크고 찬양을 잘한다. 12시가 좀 못되어 예배를 마쳤다. 서양 선교사 한 사람과 이야기했는데Southern Baptist 소속으로 Water filter 등으로 도우며 간접적으로 복음 사역을 하는데 10년 되었다고 했다. 점심 후 인레 호수를 구경하는 배를 타러 선착장에 나가보니 많은 배들이 물건을 하역하는 또 싣고 배마다 토마토 박스가 가득히 담겨있다. 뱃값을 물어보니 한명이 가면 20,000K를 내야된다고 해서 다음날 아침 5명이 동승해서 가는 것으로 3000K 정했다. 인터넷하러 갔으나 연결이 되지않아 거리를 걸었는데 Pagoda 가 너무 많고 비가오려 해서 호텔로 들어왔다.
5월 28일
날이 개었다. 아침일찍 밖에 나가보니 중들의 긴행렬이 보인다. 앞에 항아리 같은 것을 하나씩 안고간다 선착장에 가니
이 샨족들의 머리카락이 굉장히 까맣다. 토마토, 가지가 바구니마다 가득 담겨있고 그 좁은 수로빽빽이 길다란 배들이 정박해있고 그 큰 대나무 광주리들을 두사람이 막대기를 끼워 들어 올리고 그것을 도매상 창고에서 나무상자에 넣어 트럭으로 실고 전국각지로 나간다. 활력있는 아침시장이다. 그 올망졸망한 크지도 않은, 작지도 않고, 귀여운 토마토 사람들의 식탁에서 활력을 공급하는 이 인레 호수의 보배 어제 보트 예약을 받았던 웬이란 청년이 웃으며 나타났다 손님이 2명밖에 없어 더 기다려야 했다. James 라는 U.K에서온 친구와 동승했다. 그는 Hygine 을 연구하고, 동남아에서 Pandemic을 일으킬 수 있는 Virus를 조사하여 이것을 Contain 시키고 mortality를 줄일 수 있는 research를 하기위해 Bangkok에 머물고 있고 3년 되었다고 했다. 좌석은 편안했고 우산도 준비되어 있었다.
마침내 광활한 호수가 펼쳐졌다 이것을 보기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온다. 그런데 우기는 사람이 적다. 토마토 재배 하는 곳도 방문했다. 이끼류 풀들을 모아다가 떠다니는 땅을 만들고 그 위에다 토마토 씨앗을 심는다. 호수가 바다처럼 보인다. 외발로 노를 젓는 사람, 가끔 노를 가지고 물위를 후려치는 사람, 콘 꼬깔 망태기를 싣고 가는 사람. 물이 그리 깊지는 않은것 같다. 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산들, 산은 위풍당당한데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둡고 꾀죄죄하다. 샨사람들은 참 좋은 곳을 차지하고 있다 기름진 땅, 웅장한 산, 적당한 기후, 풍부한 물, 이들도 눈을 떠서 진리를 알면 이 보배로운 것들을 가지고 열배 백배의 축복을 누릴 텐데 온갖 경치좋은 곳에 파고다를 만들어놓고, 그의 포로가 되어있으니 참 우매한 사람들 불쌍한 생각이 든다. 내가 어릴때는 버어마가 강국이고 축구도 잘하고 우리나라 팀이 버마팀을 이기기 어려웠는데 유엔 사무총장도 나오고 그런 나라가 불교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 오랜 군부독재 통칭하에 동남아에서도 빈국으로 전락해버려 안타깝다. 오후 5시가 넘어 다시 돌아왔다. 평생을 이곳 호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물과 함께 의례껏 조상들이 해온대로, 체념과 길들려진 습관 속에서 둘러싸인 산들과, 오르지 못할 산들을 보며, 진리는 아예 불가능한 높은 곳에 있어 포기하고 살아가는것일까, 진리는 너무나 가까이 있는 것을 알아야하는데...
5월 29일
이제 양곤에서, 네피로 또 까로를 거쳐 인네로왔고 이제 "땅쥐"로 간다. 현 그 토스트 세조각, 달걀 프라이, 커피, 바나나 두개로 조반을 하고 짐을 끌고 시장있는 곳으로가 트럭버스를 타고 "땅쥐"로 갔다. 번잡한 상가를 지나 시원한 대로에서 어느 쪽으로 갈까 망설이다 내리막 길 쪽이 더 정돈된 것같아 그 곳으로 가방을 끌고 한참걸었다. NAMT KHONE HOTEL 에 투숙했다. $15이었다. 전기는 저녁 5시에서 11시까지들어온다고 하고 후래쉬도 하나 받었다. 주인은 샨족이고 어린 종업원들은 한국 드라마가 나오는 TV에 열중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까지 한다. 짐을 넣어놓고 땅쥐에 있는 교회를 찾아 나섰다. 우산을 빌려쓰고 언덕 위에 큰 교회를 발견했다. First Union Baptist Church였는데 돌로 지어졌고 목사관을 노크하니 목회자가 나왔다. 이곳에서만 42년간 목회했고 일곱개 교회를 이 부근에 개척해 제자목회자들에게 맡겼다고한다. 이 교회는1935년에 지어졌는데 내년이 미얀마 개신교가 들어온지 200주년이라고했다. 아들은 시드니에서 목회하고 부인도 양곤에서 신학을 하고 목회자이며, 샨 지방의 복음화가 저조하다고 했다. 내일 아침 자기의 감독하에 있는 목회자들이 모이는 회의가 있다고 해서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오백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큰 예배당이었고 어린이까지 3,000명의 교인이 있다고 했다. 저녁에는 국수파는 집에 가서 샨국수를 먹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식사하니 가격이 저렴하다.
5월 30일
아침 일찍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잠바를 다입었다. 스웨터도 입고 가죽 잠바도 입고 정말 쌀쌀한가 보다. 나도 긴팔와이셔츠를 입고나가 아침을 먹고 빨래감을 물에 담궈놓고 그 union 교회로 갔다. 회의 장에 가보니 열댓명의 목회자. 여자사역자들이 Senior Pastor 주관하에 회의를 한다. 끝난 후 나를 여러교회에 안내해 주라고 어떤 목회자에게 부탁한다 첫번째는 카친침례교회 (K.B.C)로갔다. 이층 양옥집인데 예배당 의자,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었고 여자사역자가 이곳을 담당하고 어른은 80명, 어린이는 70명 주일예배에 참석한다고 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중국 교회였다. 예배당이 훌륭한 건물이었다.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그 곳의 젊은이와 중국어로 좀 대화를 했다. 세번째로 간곳은 카렌 교회이다. 1989년에 창립되었는데 카렌족의 위대한 지도자 Rev. Mooler의 기념관과 그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곳도 있었다. 네번째로 샨교회를 방문했는데 꽃꽂이가 아름답다. 다섯 번째로 친교회를 방문해서 Salai Oukar 젊은이를 만났는데 땅쥐 대학 지리과 재학중이고 나중에 NGO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영어 성경 한권을 줬다 나중에 와서 읽었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여섯 번째로 땅쥐 신학교를 갔다. 학생이 100명 가까이 되고 4년제이고 세워진지 55년 정도됐고 학비는 연 400불 정도 이렇게 교회탐방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비눗물에 담궈놓았던 빨래를 하고 밖에 널고... 우기라 매일 비가온다. 햇빛이 나면 바깥에, 비가오면 얼른 안으로, 이것은 선교의 원리다 문이 열리면 들어가고 닫히면 다른곳으로... 또 호텔을 나와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 버스정류장에 가서 다른 도시로 가는 버스시간표를 알아봤다 만달리로 가기로 하고 표를 샀다. 밤버스다. 저녁 8시에 출발해서 오전 4시경 만달리에 도착했다
5월 31일
깜깜한 새벽 험악한 분위기의 정류장. 도무지 어디를 가야할지 모르겠다. 말도 안통하고, 뭐라고 하면 자꾸 따라붙어 말을 걸고 일단 대합실로 들어갔다. 여학생 4명이 앉아있었다 땅쥐에서 대학 5년 과정을 마치고 만달리 Technical Univ. (M.T.U)에 대학원 과정을 하며 조교도 하기위해 M.T.U에 가는데 차가 10시에 온다고 했다. 그들에게 전도지 내용을 설명하고 M.T.U에 가보니 우리나라 시골 초등 학교보다 못한 낡고 조그마한 건물만 보였다. 다시 그 트럭을 타고 시내로 나왔다. 호텔을 잡아 짐을 푸니 12시반이 됐다. 날씨도 더운데 참 힘들었다 좀 쉬고 나가서 저녁먹고 중국말은 통했다. 호텔에 돌아와 송탄제일교회 선교팀과 일정을 조율하려 이 메일을 했다. Lee Baas목사님이 보내오신 나이로비 커피숍 폭팔사건 본인도 그곳에서 커피 마시고 3시간전에 나왔는데 그런일이 있었다고 이메일을 보내셨다.
6월 1일
Palace 부근, 이침에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한다 전기 줄에 빈틈없이 비둘기가 앉아있다 Palace 입장료가 10불이라 해서 그냥 밖에서 봤다. 많은 인종이 섞여 살고 10시쯤 체크아웃하고 삐울린을 가보기로 했다 두시간 차를 달리니, 삐울레에 도착했다. 호텔에 체크인한 후 Garden에 입장료($5)를 내고 들어가니 orchid garden, 나비박물관, 소나무, 대나무 큰 연못 고기 떼들 볼 것이 많았다. 좋은 Garden 이었다. 나와서 걸어서 호텔에 들어와 쉬고 저녁 9시쯤 나가 식사하려하니 거리가 깜깜하다. 빵 몇개 사가지고 와 저녁 요기하고 TV를 보니 아웅산수지여사가 Worid Economic Forum 이 기자회견하며 30분간 질의응답하는데 Oxford 영문과 출신답게 똑똑하다. 투자에 있어서 투명성, 개방하여 다른나라와도 균등한 기회, 중국과는 우호 관계 지속, 해외에 있는 자국민을 불러들이는 일헌법, 국회일정, 불필요한 법정리 등등을 이야기한다. 버어마 민족의 잠재력을 보았다. 이들이 주님안에서 분명히 일어설수 있는 데 이렇게 살아야 하는게 너무나 안타깝다. 불교가 너무 쎄고, 군부도 너무 쎄다. 밤이 되니 날씨가 쌀쌀하다.
6월 2일
아침에 시편 40편1절~2절을 읽있었다. 간밤에 두통이 와서 두알을 먹었는데 이제 두통약이다 떨어졌다. 조식을 먹고 약국을 수소문해서 겨우 찾았는데 9시에 연다고 했다. 그래서 건너편에 보니 마차가 있어 1시간에 3000K 해주겠다고 해서 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근사한 집들도 제법있고 이곳에 신학교를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날씨도 좋고, 주거 환경도 좋고 인구도 제법있고,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가는데 Adventist 교회. Methodist 교회가 보인다 또 다른 교회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하니 신학교 생각이 없어진다. 캄보디아가 너무 습해서 피부습진으로 고생해서 좀 시원한데로 왔다갔다
하면서 사역을 할까해서 이번 탐사방문을 하게 된것이다. 약을 사서먹고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이번엔 라쇼(Lashio)로 가보기로 하고 합승택시 앞좌석에 앉아 (16,000K) 험난한 산을 꼬불꼬불 올라갔다 내려갔다 6시간정도 달려 라쇼에 도착해서 Golden Hill Hotel에 체크인했다. 방에 들어와 시편 40편을 다시 읽었다. 하나님 이곳으로 저를 인도하십니까? 물어보았다, 인구는 6만정도 해발 3000ft 이상 12월, 1월에는 1~2도 까지 내려간다하고, 공항도 있고, 이곳에서 무세까지는 4시간, 그곳은 중국과 국경지역이다. 이렇게해서 양곤에서 네피도 - 까로 - 인니 - 땅쥐 - 만달리 - 삐울린 - 라샤 까지 외국인이 올수 있는 샨지방의 끝까지 온셈이다. 이메일을 체크했다 이형환목사님께 그간 일정을 쭉 써서 보냈다. 음식이 너무 기름기가 많아 차를 계속마셨다. 내일은 주일이다. 저녁 때 Union First Baptist Church 에 가보니 문이 잠겨 있었다.
6월 3일 (주일)
아침 6시가 넘으니 교회종을 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실제로 밖에 나가면 말 한마디 참기 힘들정도로 세상이 위력적이다. 많은 사원들, 불교 교리를 열심히 배우는 이들, 믿음이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음을 실감한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외국인이 있길래 이야기를 했다. Breck Merkle 이라고 미얀마에 온지 6년이 됐고 버마말도 잘하고 샨족에게 사역하고 있고 농업선교도 하고, Southern Bertist 파송받았고, 집은 양곤에 있다고 했다. 남침례교 선교사들이 1000명 정도 있는데 내년에 치앙마이에서 Convention 이 있다고 했다. 11시예배에 갔는데 큰 예백당에 꽉차게 사람들이 앉아있다. 설교 후에 성찬식이 있었고 예배 후 담임목사와 이야기했다 이 교회에서 40년간 봉직했고 교인수가 천명 정도이고 이날 창석자도 600명이었다.
미얀마 교회들은 역사가 오래되고 성숙한 것 같았다 이곳으로 왜 내가 오겠되었을까 내가 이곳 미얀마에서 할일이 없는 것 같았다. 캄보디아 사역이나 잘해야지 여러 생각이 교차된다. 여자목사도 있고 부교역자도 5명은 되는 것같다. 성령님이 급하게 미얀마 교회에 하시고자 하는것은 무엇인가
6월 4일
아침 6시가되니 Chanting 하는 스피커 소리가 요란하다 그런데 그 Chanting 소리에 맞추어 화답하는 많은 사람의 소리가 들려온다. 오블교인들이 농장에 간다고 해서 나도 따라갔다. 리치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삼에이커가 넘는 농장이고 물을 산에서부터 끌어와 쓰고 있었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아원에도 들렀는데 60여명의 아이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교회에서 6개의 유아원을 운영한다고 하고 지교회도 6개정도 있다. 또 나를 신학교로 데리고 갔는데 중국어로 하는 반, 버마어로 하는 반해서 60명 정도가 공부하고 있었고 우리 KBS 신학교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신학교에서 운영하는 농장에 가서 옥수수를 같이 심었다. 이곳에서 훈련받고 지방교회나 산골전도사로 나간다고 했다. 저녁때 중국인 교회연합집회에 참석했는데 8 개의 중국인 교회에서 온 300명이 모여 집회를 했는데 매달 돌아가며 다른 교회에서 모인하고 한다.
6월 5일
오늘은 양곤가는 버스를, 낮 12시에 탄다. 그러면 내일 새벽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 샨 지방에서 여행은 즐거웠다. 이나라 중고등학생 교복은 초록색이다. 아침에 중국교회를 방문하니 자매가 한명 있었는데 삐울린에서 중국어로 4년을 공부하고 이곳을 섬기고 있는데 라슈족이고 주일날 100명 정도 모이고 이곳에서 제일 오래된 중국 교회이고 이곳에서 여러 교회가 독립해 나갔다 한다. 버스 정류장에 가서 양곤가는 버스를 탔다. 옆좌석에 Nau Aung이라고 하는 청년이 않았다. 부모형제는 무제에 살고 그는 Refuge Melar에 있다. 가면서 세번 정도 휴게소에 섰다. 새벽 4시에 양곤에 도착했다.
6월 6일
정신없이 나도 내력, 컴컴한 정류장을 걸었다. Nau Aung 청년은 태국 국경까지 가는 표를 샀다. 거기서 또 Refuge 까지 차를 타고 가야한다. 차라리 공항에 가서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싶어 공항에 도착해 건너편 식당으로 갔다. 이제 아침 6시가 되었다 비행기는 오후 3시 반이다. 16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오면서 무리를 했는데 그래도 몸은 괜찮았다. 공항으로 와서 바지를 갈아입고 세수를 했다. 짐을 건너편 식당에 맡겨놓고 Breck 에게 전화를 했다. 그가 공항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의 차로 그의 아파트로 갔다. 월세가 800불이라 한다. 부인과 두살된 딸과 8개월된 아들 Judson 과 같이 점심먹으러 갔다. 식사를 하면서 The Way to the Heaven 전도책자를 보여뤘다. 가능하면 버마어와 샨족언어로 번역하고 싶었다. 이후에 이 전도책자는 Breck의 도움으로 미얀마 신학교수에 의해 버마말과 샨족언어로 번역되어 그 파일을 우리에게 보내와서 프놈펜에서 각각 만권씩 인쇄하여 여러번에 걸쳐 미얀마를 방문할 때마다 버마교회와 샨족교회에 전달되었다. 그당시 버마의 전도지를 보았는데 거의다 한장짜리 단순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12장 짜리 컬러로 된 좋은 종이에 구원의 도리를 모두 담고 있는 충실한 전도책자였기에 전도자가 가기 힘든 산간마을, 교회가 없는 마을의 사람들, 이러한 복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좋은 책자이다. 특히 샨지방은 산이 많아 교통이 불편해서 전도자가 가기 힘든 곳에도 이러한 책자는 유용한 전도 도구가 될 수 있다 참, 이 탐사여행의 가장 마지막 순간에 이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셨다. 양곤에서 네피도 또, 까로, 인레, 땅쥐, 만달리, 삐울린, 라쇼 여러 곳을 정처없이 돌아다녔는데 마지막 라쇼 호텔에서 아침 식사하다가 만난 Breck을 양곤에서 다시 만나 전도지를 번역하는 그 일을 통해 우리는 캄보디아에서 그 전도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된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는 인쇄비가 양곤이 프놈펜보다 두배이상 비쌌다. 캄보디아는 그때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고 선교도 왕성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몸이 지쳐서 좀 시원한 곳을 찾아 미얀마 샨지방에 사역의 기회가 있는가 싶어 돌아다닌 결과가 전도지번역, 인쇄로 결론이 났다. 여하튼 이렇케라도 미얀마 선교의 일부를 담당하게 되어 기쁘다. 비행기를 타고 1시간 35분걸려 프놈펜공항에 내려 송탄제일교회 선교답사팀 세명과 저녁식사를 하고 또 오늘 Moriah B-P 교회 주관으로 우리 KBS에서 250명이 모여 이틀간 Camp를 진행 중이다. 석장로님께 전화드리니 잘 되어가고 있다고 하셨다. 이번주 금요일에는 김기중 목사님이 방문하시고 다음주 월요일에는 싱가폴의료선교팀이 깜봇 교도소에서 사역을 하는데 세례식도 있다. 김기중 목사님이 세례를 베풀 예정이다. 이렇게 해서 제1차 미얀마 선교여행이 마무리되고 제2차 여행은 2012년 12월8일부터 19일까지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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