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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캄.사역자 한국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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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
아침에 풀을 깍고 학교 주위에 뱀이 숨을만한 곳을 없엤다.
짐을 챙겨 캐피탈 vip로 가서 속하, 반니와 차타고 공힝가니 대부분이 도착해있었고
미역은 여권 잃어버린줄 알고 이틀 동안을 집안를 이잡듯 뒤졌다고..
출발시간 몇시간을 앞두고 여권이 없어져서 못간다고 연락이왔다. 스라이빠우가 비자 받은후 모든 여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깜빡했던 것이다. 그때서야 뜨봉트몸을 출발해서 공항에 겨우 도착했다.
하노이에서 환승했다. 모두 피곤해한다. 기쁘면서도 힘든 여정이 시작되었다. 10명 모두 가게되어 기쁘다.
한국으로 단기선교를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4월 24일
하노이공항에서 기다렸다가 김해공항 오니 짐나오는 벨트가 많은 비행기 도착으로  과부하가 걸리고 
우리 짐도 한참있다 나옴. 은주자매차에 큰 짐넣고, 연정남집사 (캄. 깜퐁참, harvest에서 2개월 사역)차에 또 몇명 타고, 김선교사는 Vanny와 산부인과 가고, 
나는 3명과 택시타고 엑소시움 아파트로 와서 김밥 좀 먹고, 최연실 집사님 (공부 가르치는 일) 차도 와서
해양박물관 가서 보고, 바닷가를 배경으로 조깅.사진찍고, 돼지국밥 먹고, 3명은 피곤해서 최집사님 차로 아파트로 돌아오고 나머지는 산마을 구경갔다 와서  정진우 의사분 오셔서 마그네슘.비타민 주사맞고 나와서 요트타고, 저녁은 이혜진집사님(칫과의사)사주셔서 먹고, 산위에 가서 야경보고 왔다.
몸에 한기가 나고 피곤했다. 주사맞고 좀 회복했다가 또 피곤하다. 첫날인데 체력을 잘 관리해야한다.

 

4월 25일
간밤에 선물줄 것을 집사람과 스라이뻐우가 큰 가방 2개 작은 가방 하나로 만들어 놓은 것을 우체국에 가져가 10군데 되는 곳에 택배로 부쳤다. 짐이 좀 가벼워 졌다. 
엘레브에서 진행되는 박신실 사모님 (정필도 목사님 사모)의 세미나에 참석했다.
1989년도 교회에 평소에 신뢰하던 어떤분이 법원에 깜짝 놀랄 사실관계증명서를 제출하고, 그때부터 몸이 아프고 음식도 잘 못먹고, 하나님이 왜 이렇게 가혹하게 하시는지 의문이 생기고.. 어느날 참새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떨어지지 않음을 깨닿고 
그때부터는 다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러한 일로 더욱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고 맡겼는데 교회에는 더욱 좋은 일들이 생기고
장로님들도 목사님을 더 존경하게 되고 결국 7년만에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간증을 하심.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이것을 확실히 믿을 것을 권면하심.
시엠리업에서 온 스라에엠도 자신과 남편과 다툼이 많았는데 남편을 존경하고 맡겼더니 모든일들이 해결되었다는 간증을 함.
점심은 짬뽕, 짜장면, 탕수육을 먹고, 남자들은 꼽배기 시켜주고,  송도에 케이블카를 타러감. 이숙애목사님은 차사고로 병원에 계시고 딴분을 보내어 표를  사주시고..
정진우의사 크리닉 에 가서 완니 사모 검사하고 약 받고 다른 사람들은 선물로 받은 삼만원 쿠폰으로 인삼젤리 사탕, 비누, 양말등을 샀다. 저녁은 대구탕을 먹고 모두 은주자매와 수영로교회 철야예배를 가고 나는 한기가 들어 엑소디움으로 돌아왔다.

 

4월 26일
아침이 나와서 Art 공원을 걸으며 사진찍고 차 한잔하고 짐챙겨서 터미날 가서 버스타고 마산에 내리니 
김규성 목사님이 미니 버스를 가지고 오셔서 짐 실고 사람도 다 타고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에서 외손자 되시는 박유신 목사님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어릴때부터 할아버지, 아버지로주터 강한 신앙을 물려받아 국민학교 3학년때도 신사참배때 절하지 아니하고..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애양원에서 나병환자에게 복음전하고, 아들 둘을 여수.순천 반란사태때 공산주의자에게 잃고 살인자를 양아들로 들이고 신학교육 시키고 
본인도 육이오가 발발했을때 부산으로 피신할수 있었는데 마산 애양원에 남아 죽임을 당하고 삼부자가 순교하게 되고, 
기념관에는 9가지 감사문을 돌에 세겨놓고, 생가집을 복원해 놓고..

Nine Thanksgiving Prayers of Pastor Son YangWon
1. Thanksgiving for having martyrs from such a sinner's genealogy. 
2. Thanksgiving for giving such a jewels of church members from multitude of believers on earth. 
3. Thanksgiving for sacrificing the precious first and second son from six children ( 3 sons, 3 daughters)
4. Thanksgiving for 2 sons' martyrdom,  even one martyrdom is precious. 
5. Thanksgiving for being killed on the way of Evangelism, even it is blessed to die on bed in faith.
6. Thanksgiving for going to heaven,  better place than America, even he prepared to study there.
7. Thanksgiving for giving me the mind of forgiveness & adoption to my son, even this adversary killed my beloved sons.
8. Thanksgiving for my assurance that multitudes of my spiritual sons will come out from the martyrdom of my earthly sons.
9. Thanksgiving for finding the 8 truths above, joyful mind toward God, peaceful faith from this suffering & tribulation. 

죄인 가정에 순교자가 나오게하심을 감사, 하나도 아니고 둘씩 나오게 하시니 감사, 
미국유학보다 더 좋은  천국으로 보내니 감사, 지옥갈 살인자를 양아들로 삼아 회개시켜 천국 보내니 감사....
그 귀중한 영혼인 문둥병자들을 자신에게 맡겨주시니 감사..
신학을하고 가장 낮은 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문둥병자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고,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5년간 감옥에 갇히고 그 안에서도 음식을 다른 죄수에게 나눠주고 추운데 덮을것이 모자라도 고난을 주신것을  감사하고, 
욥의 고난을 솔로몬의 영광보다 낳게 여기며 그렇게 믿음을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사셨다.

설명하신 박목사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 손목사님은 어떤 특별하게 위대한 신앙을 가지신 분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처럼 그 살인자를 총살형에 넘길수도 있었지만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에 그 사람을 용서하기로 작정하고 양아들로 삼는 선택을 했을뿐입니다. 
많은 사람처럼 순탄한 목회를 택할수도 있었지만, 가장 미천한 자를 섬기기로 결심하고 문둥병자를 돌보는 일을 결정했을뿐입니다. 
부산으로 도망가서 생명을 연장시킬수 있었지만 그 사랑하는 문둥병자 성도들과 같이 남아있겠다는 결심을 했을뿐입니다"

손목사님의 신앙을 십분의 일만 본받아도  오늘날 한국교회가 부흥할텐데 라고 박목사님이 이야기 하신다.
저녁에는 오구식 목사님, 사모님, 환호, 그의 처와 다같이 중식당에서 식사했다. 오목사님을 못뵌지가 15년도 더 된것같다.
모텔에 돌아와 나눔을 가졌다. 손목사님에대해 더 이야기 하달라하여 들은대로 이야기해줬다.
5명이 그간 3일간의 소감을 발표했는데 여자 2명은 많이 울면서 발표한다. 끔산은 캄보디아에 손목사님과 비슷한 스토리를 지닌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4월 27일, 주일
최방열 장로님이 하시는 감자탕 집에서 아침을 먹고 20여분 걸어서 성은교회를 갔다.
최장로님도 건물을 팔고 선교를 하고싶어하신다. 미국에서도 10여년 사셨고, 이제 연세도 있으시고해서..
좋은 날씨이다. 열씸히 걷고 뛰고하면서 야구경기장을 지나 교회에 도착하니 건물에 예수님이 답이다 라고 크게 적어놓았다.
11시 예배에 참석하고 점심으로 잔치국수를 먹고, 교제하고,..
1시반 예배때, 캄보디아팀 특송, 쵸비 사모 간증,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어려서 신학교와서 4년넘게 공부하고 프놈펜교회에서 잠깐 섬기다가, 출소한 쏘쿤 형제 만나서 결혼하고 쏘쿤형데는 kbs에 신학공부하며 오뜨라오 교회도 섬기고, 그때 나타나엘 첫째를 낳고,  쏘쿤 졸업후, 깜퐁톰 삼보 성은교회로 옮겨 사역하고, 쵸비는 이제 40살인데 벌써 20년정도 사역했고 나타나엘은 내년에 대학을 간다. 그렝스 딸은 이제 9학년.
미역 사역자 간증, 교도소 외양간옆 나무그늘에서 영어를 가르치기시작했고 2년 후 첫 결신자가 나오고, 나중에 점점 신자가 나오고, 이제 십수년 사역한후 천여명의 믿는자가 나온것을 간증.
그리고 내가 
이제 6번째 인의 시대임을 이야기했다.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 터지고 더욱 고통의 시대로 들어가기에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죽음, 적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힐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했다.
오후 4시50분 고속을타고 광주에 오니  8시경이 되었다. 터미널에 이목사님 부부, 목포의 이창세 목사님, 정우현 목사님이 같이 오셨다.
오일교회 권사님이 마련해 놓으신 아파트 guesthouse로 가서 김밥, 오댕, 떡뽁기, 피자, 치킨을 먹었다. 3 unit에 나누어잤다.


4월 28일
목포에서 차를 가져오신 이창세 목사님, 정우현 목사님, 밴 두대로 광주에서 증도 문준경 전도사 기념관을 둘러보았다.
17세에 결혼하자마자 첫날밤부터 외면을 당하고 과부처럼 살다가 자신을 보살펴주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목포로 내려와
재봉틀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다가 복음을 받고 서울신대에서 공부하며 신학교 시절에도 방학이면 고향에 내려와 교회 3개를 개척하고 졸업하고는 신안군의 모든 섬을 일년에 고무신 9 켤레가 닳도록 섬에서 섬으로 다니며 (보통사람은 일년에 한켤레 신음)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자를 고치고 전도사역을하며 18년간 100개 교회를 개척하고
CCC의 김준곤 목사님등 유명한 목회자 100여명을 길러내고, 
마침내 육이오가 터지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목포에서 증도로 가서 교인들을 돌보다가 공산주의자에 잡혀 처참히 순교함.
해변가에 있는 그의 무덤에 가서 다같이 손을 얹고 기도하고 화창하고 시원한 날씨속에서 그의 사역을 되새기며 다짐하고
갯벌위로 난 다리를 한참 걸으며 짱뚱어, 게, 넓은 갯뻘을 보고, 그 시원하게 부는 성령같은 바람을 마음껏 들이키고, 
다시 광주로 와서 고속버스타고 전주로와서 큰사랑교회 목사님.사모님이 준비하신 도시락 받아서 
고속버스타고 오산에와서 이상범 목사님 밴으로 기도원에 도착해 도시락을 먹었다.
오늘 하루도 전투적으로 다녔다.

 

 

4월 29일
아침에 컵라면과 햇반으로 이상범 목사님과 같이 기도원 방에서 식사하고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글짜가 새겨진 바위에서 몇번 복창하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그 바위에서도 복창하고 영산홍 곱게 만발한 기도원 경내에서 이리 저리 다니며 꽃밭에서 사진찍고 성막 강좌를 들으러 들어가고 나는 방에서 한숨잤다.
마치고나니 천안에서 박은준간사가 밴을 가지고와서 이상점 목사님 밴, 밴 두대로 천안 기쁨이넘치는교회에 도착해서 짐풀고 나니 
전웅환장로님.임길빈 권사님이 차 가지고오시고 한만식 집사님도 용인에서 오셔서 교회에서 박목사님이 준비하신 예쁜 반찬들을 먹고 40층이 넘는 높은 곳에서 천안 시내를 내려다보고 들어와 전장로님이 가져오신 옷가지 나누어주고 두 방으로 나누어 잠을잤다.

 

4월 30일
아침에 천안중앙시장을 둘러보고 전장로님이 사주신 도가니탕, 설렁탕먹고 꽃들 가득한 카페에서 음료, 빙설 먹고 다이소 들리고 
천안역 앞에있는 캄보디아 교회를 들렸다. 담임목회자는 한국에 온지 20년이 되었고 교회 개척한지는 10년이 되었다고.. 
성도들은 주로 처음 일자리를 그만두고 다른 일터로 가기위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같이 찬양하고 소개하고 기도했다. 캄보디아에 단기선교 왔다가 간호사가된 한국자매가 대전에서부터 성심당 빵집의 빵을 사와서 같이 먹었다.
저녁에 아구찜 먹고 8시 수요예배에서 끔산, 레악스마이, 속하가 사역간증하고 나는 지금은 계시록 6번째 인의 시대로 들어감을 이야기했다.


5월 1일
천안에서 교회 밴, 전장로님 차, 최세종 목사님 사모님차 세대로 천안역에 와서 무궁화타고 서울역에 내려
전해일 목사님은 차에 우리 짐 모두 싣고  숙소로 먼저 가시고 홍미 자매 인솔로 김밥천국에서 김치찌짐, 김밥등 아침먹고
남대문쪽 고가다리로 올라가 여러 큰 화분에 담긴 각종 식물, 나무를 보며 걷고 뛰고, 
비가 오기 시작해서 우산을 사서 전철타고 한번 갈아타고, 경복궁역에 내리니 비가 많이와서 박물관 먼저 가니 중고등 학생들이 많이 견학왔고, 
옷가지, 그림, 패물, 장농, 금관 갖가지 둘러보고 나와서 빗속을 걸어 한복집 가서 한복대여해서 여자들과 끔산이 한복입고
고궁 안으로 우루루 들어가 꽃이 있는 곳, 고궁담, 나무기둥, 근정전, 경회루 빨리 빨리 다니며 사진촬영을 신속히했다.
한복 돌려주고 나오니 노동자행사로 많은 군중이 거리를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광화문 일대에 길이막혀 
전목사님 차가 한시간정도 지체되고, 우리는 빗속을 그들과 마주치며 걷고, "위원장동지" 이런 마이크 소리를 들으며 일행은 한국의 새로운 단면을 보게되고 식사장소인 에술리를 가는데 삼청동, 북촌, 북악 스카이웨이로 둘러가서  대학로교회 팀들 만나서 뷔페식사하고 이화여대 잠깐들러 석조건물 큰 강당, 계단 내려가 사진찍고 양화진으로 가니 이태규목사님.우차선 사모님 와 계시고
전목사님 설명듣고 꽃이 만발한 cemetery 둘러보고 이목사님과 작별하고 일산까지 가서 
박병은원장, 부인, 유진, 유아 가족이 대접해주는 샤부샤부 먹고 화장품 선물받고, 
박원장이 잡아준 YMCA 유스 센터에와서 여장을 풀었다. 이번 여정에도 이 분에게 많은 신세를 지게됐다.

 

 

5월 2일
차량수배가 안되서 여주 소망교도소를 가는데 이상범 목사님에게 밴을 부탁드렸다.. 
6시가 조금넘어 이목사님이 밴을 가져오시고 컵라면,김밥, 찌짐먹고 홍미전도사가 차 가져와 여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산길도 나오고 녹음이 짙고 비가 온 후라 풍경이 깨끗하다.
한참을 달려 도착하니 시간이 남아 막 개통한 출렁다리위를 걸어 저 끝까지 갔다오니 쌀쌀하지만 기분이좋다.
소망교도소에 들어가니 그곳은 inmate 라고 부르지않고 brother이라고 부르고 식사도 교정관이나 재소자가 같은 식사를하며 
직업교육은 좋은 시설의 커피, 이미용, 제빵등에열씸히 참여하고 음악교실도있어 크메르 찬송을 선사하니 
그곳에서도 답가를하고 미역사역자가 한마디하고, 쵸비사모는 너무 천국음악 같다고 연신 눈물을 흘린다.
소장의 환대속에 소장실에서 사역을 나누고 같이 사진 찍고 기도제목 나누고나니 소정의 헌금을 주신다.
상담과장님의 설명을 듣고 따뜻한 날씨에 건장한 재소자들이 족구를 하며 평안하고 건강한 생활을 하는것이 목도된다. 캄.사역자들은 이곳이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처럼 보인다고한다.
밖으로 나가는 자유가 없는 것만 빼면 훌륭한 생활공간이다.
그곳을 나와 세계십자가선교회로 가서 86세이신 안일권 목사님을 만나 사역 이야기를 들었다. 
ROTC 출신에 사업하시다 감옥에서 교도소선교를 작정하고 맹인이 되셨고 각국에서 온 마약, 술, 도박, 섹스 중독자들을 회복시키시고 소망교도소에서 카운셀링하신다. 
45년간 감옥생활을한 전과 19범의 조세형 집사님도 같이 생활하신다. 이상범 목사님이 다시 소명교회까지 태워주셔서 도착하니 
여러분이 기다리고 계시고 정만수 목사님도 대법원 청원서류를 가지고오셨다.
상암 월드컵스타디움까지 쌀쌀하지만 걸어가서 식사하고와서 예배 같이드리고 뽀아임, 심반나, 스라이빠우 세명이 발표를하고 찬송하고, 예배마치고 한강변에 가서 라면먹고 숙소로왔다. 
하루 하루가 기적처럼, 알차고 기쁘고, 사랑 가득히 지나간다.

 

5월 3일
오전에 전해일 목사님이 차 가져와서 인근 전철역까지 두번에 걸쳐 사람과 짐을 날라주셨다.
짐들을 끌고 전철타서 대곡역까지 가서 갈아타고 한번 더 갈아타고 기흥역에 내려
대기하고 있는 류목사님 향상교회 밴으로 선교관에 짐풀고 김종구 선교사님, 사모님 같이 생선구이집에서 저녁먹고 쉬었다.
일산에서 짐싸서 이곳까지 이동하니 하루가 다간가. 날씨는 쌀쌀한데 방은 따뜻하다. 산자락에 위치해 있고 교통은 불편한 곳이다.
방안에 과일과 과자를 많이 사다 놓으셨다.

 

5월 4일, 주일.
향상교회 9시반 한국인 예배에서 캄.사역자들 특송하고 11시에 선교부에서 3명이 사역 간증.발표하고 
교회에서 점심먹고 외국인 예배에서 칸속하 자매가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하자 라는 주제로 
고린도전서 9장 24에서  27절로, 달음질하는 사람은 많아도 상은 한사람이요, 달리기 경주를 하려면 체력관리를 철저히 해야하고, 썩어질 육신을위해 살지말고 영원한 생명을 살자. 
그냥 걷는것처럼 예수 믿지말고 전력을 다해 질주하는 신앙생활, 이 경주를위해 철저한 영적관리 (말씀읽기, 기도)를 하자고 권면했읍니다.
이후 수원으로와서 한팀은 itx, 한팀은 무궁화 기차타고 서울역와서 이제 경주로 갑니다. 
기차시간 늦을까 조마 조마했는데 도우시는 분들덕에 잘 타게되었다.
중국에서 오래 선교하시고 빌리온 대표로 오래 섬기셨던 김종구 선교사님이 이곳 교회에서 외국인 예배를 담당하셔서 오게되었다.
경주에 도착해 금척교회 박대근목사님.사모님, 대구에서 온 박종환장로님, 이창수 집사님, 하정복 집사님. 최삼열 집사님 만나 식사하고,
쵸비사모가 오래전 칠곡에서 음악공부 3개월간 할때 세분이 많이 돌보아주었다.
금척교회 새벽기도실에서 이불을 깔고 잤다.

 

 

5월 5일.
아침날씨가 쌀쌀하다.
동네를 길따라 걸어가다 보니 90세 되신 분이 농사를 지으시는지, 70대로 보이신다.
또 80대 금척교회 교인을 만났다. 채소밭에 물을 싣고가서 물을 주신다.
처제가 만든 불고기로 아침을 먹고있으니 홍성길 목사님.사모님이 밴을 가지고 오셨다. 
홍목사님은 소령으로 예편하시고 모친의 서원대로 목회자가 되고 군선교를 오래하셨다.
짐을 두 밴에 나누어 실고 대릉원에 가서 경내를 둘러보고 천마총 안으로도 들어가보고 나와 불국사에 가니 차가 밀려 조금 걷다가 
부산으로 가서 해운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LCT로 가서 전장로님.사모님. 경북대 교수로 은퇴하신 유관우 교수님 만나 복어탕 먹고 해변으로난 산길 철길을 따라 걷고 까페에서 마시고 방에 들어와 기도회를 가졌다.
전도서 1장 4절.  마태. 8장 22절로 말씀을 나누었다. 그리고 각자 기도제목을 말하고 기도를했다.
전장로님이 한사람씩 봉투를 하나씩 주시고 티셔츠도 주셨다. 이번으로 세번째 LCT를 마련해주시고 83층, 29층, 두 UNIT을 쓸수있게 해주셨다.
이 위에서 보는 해운대 비치, 집들, 바다. 너무 멋있다. HEAVENLY MANSION 에 대해 실감나게 상상해본다.

 

5월 6일.
새벽 4시에 일어나 4시반에 8305호로 이동해서 간단히 아침먹고 5시반 이지영 목사님이 보내준 25인승 미니버스에 짐을 싣고 김해공항에 도착하니 2시간 delay 되었다고한다.
좋은 LCT도 일찍 나와야한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일찍 나와야한다. 그렇치않으면 천국행 비행기를 놓치게된다.
공항에서 또 아침을 먹었다. 목이 많이 따갑다. 목감기가 시작되려나.
탑승해서 4시간 반을 닐아 호치민에 도착하니 오후 4시 40분정도 되었다. 우리를 기다리고있던 비행기는 한시간 정도 늦게 출발해서 30분정도 날아 프놈펜에 도착했다.
나는 입국수속 하느라 제일 늦게나와 같이 기도하고 각자 집으로 흩어지고 칸속하와 반니와 같이 저녁먹고 툭툭이 타고 비락분탐 vip 타고 시하눜 와서 또 툭툭이로 kbs에 도착했다. 밤이 늦은데 빠우가 나와서 맞이해준다.
그 방 그대로..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전 방문과는 다른 점은 이제 캄보디아도 해외선교를 할수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교훈

1. 박신실 사모 세미나.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떠들고 다니지말고 그 것을 안고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계속 기도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언젠가는 해결해주시고 더 나은 상태로 변화시켜주신다.

2. 김은주 자매. 
집사 직분의 평범한 사람이지만 한 교회가 담당할 분량을 담당했다. 아파트 주인은 나가서 주무시게하고 아파트 통채로 우리가 이틀간 사용하게하고, 반니사모 3년간 통증을 여러 의사에게 보여 진찰하게하고 마침내 병을 고치게하고, 매끼마다 식사를 친구들에게 분담케하고, 차량, 요트, 케이불카도 그렇게해서 타게하고, 놀라운 mission coordinator 의 역활을 감당.

3. 손양원 기념관
가장 비참한 상황속에서도 9가지 감사기도 제목을 찿아내고 감사생활로 이어지게 하였는데, 우리의 고통이나 절망은 그에 비해 크지않기 때문에 우리의 고통속에서도 얼마든지 감사생활을 할수있다. 또 성경말씀대로 결정하는 삶 ( 신학후에 애양원 사역 결정, 신사참배 안하기로 결정, 부산으로 피난 안가기로 결정) 그렇게 결정하면 성령이 도우시므로 뜻을 이룰수있다.

4. 문준경 기념관
버림받은 한 여인을 통해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가배출됨. 한알의 밀알이 썩어진다는 것이 어떤것임을 생생하게 교훈함. 한많은 인생들에게 좋은 소식. 그 한이 없었으면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 것을, 그 한이 성경말씀속에서 승화되었을때 무궁무진한 힘과 능력이 발산될수있다.

5. 이상범 목사님.
7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우리의 필요가 있을때 언제든지 차량을 운행해주시고 교육적인 방문 (성막, 기독교박물관..)을 하도록 해주심. 우리 짐을 미리 다음 목적지로 운반해 놓으시고 우리의 여행을 편하고 지장을 받지않게 하심. 타인을 위한 삶.

6. 소망교도소
죄수라 부르지않고 형제라 부르고 식사내용도 교도관이나 수감자나 동일하게 먹음. 모두 기쁨속에서 생활.재범율이 낮고 복음화율이 높음. 우리도 죄인이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고 차별대우 하지않으심.

7. Luggage 끌고 이동.
열두명이 많은 짐을 끌고 전철역을 오르내리고 환승하고 많은 역을지나 목적지로 감. 에스겔이 이사짐을 싸서 거리로 나가 이사하는 것처럼 돌아다님으로써 임박한 전쟁으로 사람들이 이와같이 피난갈것을 시각적으로 보임. 우리 캄보디아팀의 이동을 통해 다가올 환란을 보이심.

8. 경주고분
많은, 큰 무덤들. 왕족, 귀족, 한때를 호령했던 인물들의 말로는 흙들을 쌓아놓은 고분. 천마총안에 유물들. 생명은 없고 죽음만이. 죽은자들이 죽은지를 장사지냄. 산자는 생명의 일을 감당하여야함. 재물을 불리고 부동산.주식.보험.노후보장. 이러한 죽음의 일을위해 살지말고 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가지고 살아있는 일, 살리는 일을해야함.

9. LCT RESIDENCE
새예루살렘을 상기시키는 고층의 훌륭한 시설, 좋은 전망, 깨끗하고 MODERN한 스타일. 천국을 연상시키는 이 건물. 이 건물.시설을 보면서 새예루살렘을 향한 갈망을 크게 가져야함. 좋은 아파트에서 살기를 갈망하기보다는 LCT보다 천배, 만배 좋은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진작시켜야함.

10. 항공기 지연
김해에서 출발이 2시간 DELAY되어 호치민에서 연결편을 놓칠뻔 함. 우리가 호치민에서 출발시간보다 한시간 늦게 도착했지만 항공기가 기다려줘서 타고 프놈펜에 예정대로 도착. 주님은 우리의 회개를 기다려주지만 너무 늦게까지는 기다릴수없음. 다른 승객의 Complain 이 너무 심하게 할수는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