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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기행문(강영선 권사, 13 ~23.Jan.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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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중국 선교를 갔고 여러 가지 느끼고 깨닫는 점도 많았다. 그러나 집에서는 중국 선교때 여권을 빼앗긴 것이 들통이 나서 다음부터는 선교여행을 가지 말라고 남편과 아들의 반대가 심했다. 영어 성경 공부 갈 때마다 캄보디아행이 요구되었고 나도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나? 일반 관광여행 하고는 차원이 다른 많은 감사와 기쁨이 내 생애을 좌우하는 선교라는 것을 깨달을수록 더욱 더 가고 싶었다. 중국 선교를 다녀 온후 계속 영어 성경 공부를 하는데 공부 놓은지가 몇십년이 되어 도무지 머리에 입력이 안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기독교 방송국의 Holy Holy program을 보게 되었다. 아동(6~7세) 상대로 하는 영어 성경 이야기와 영어찬송, 복음송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으로 공부하면 조금은 더 쉽게 영어 성경 공부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되어 수소문하여 비디오 테잎 10개를 구입하여 나누어 보게 되었다. 캄보디아행을 준비하시는 선교 국장님께서 그 곳에서는 어린이 설교도 준비해야 되니 김미순 사모님께 준비하라고 하신데 어렵게 생각하시고 계셔서 옆에서 내가 그 비디오테잎으로 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더니 선교 국장님께서 김미순 사모님3편 강영선 권사님 2편을 준비하라고 하신다. 난감했다. 어린이 설교 해 본 적도 없고 영어로 외워서 해야되고 시청각 교재도 있어야 되고...

선교 국장님께서 conclusion과 기도(영어)문을 힘써 주셔서 원본이 준비 되었다. 12월 30일날 설교하시는 분들 총 연습을 위해 모이라고 했는데 잘못 알고 다른일 만 보다가 밤 늦게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선교 국장님께서 전화가 왔었는데 캄보디아 10일날 못 떠나고 1월 13일 07:50분까지 "K" 앞으로 모이라고 하셨단다. 남편한테 이실직고 하면서 순서지도 보여주고 설교 원본도 보여 주면서 영어 발음이 안된 것 가르쳐 달라고 아양을 부렸다. 악센트도 중요하고 통역하는 사람이 제대로 통역하기도 힘들 것이라 면서 시큰둥하다. 통역에게 미리 원본을 주고 나도 외우지만 원본을 보면서 하게 된다니 억지로 통과가 되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들에게는 어떻게 승낙 받겠냐는 남편한테 도와 달라고 그러면 아들도 승낙할 것이라고 하면서 남편과 원본을 가지고 공부하는데 아들이 직장에서 돌아왔고 남편 이야기를 듣고 아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렵게 생각하고 이야기도 못해본 것이 순간에 이뤄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하심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시청각 교재의 준비가 내 힘으로는 어려웠다. 미대 다니는 조카는 방학이라 울산집에 갔다가 1월3일에 서울에 왔다. 주일날 만나 그림 부탁을 하였더니 순순히 “네” 한다.(다음 주일날 받기로 하고) 그림은 2편인데 1편도 1월12일 밤10시가 넘어 받게 되었다. 작품이었다. 1편은 어떻게 해야되나 우선 크레파스 풀 가위. 양면테잎. 집에 있는 것만 챙겻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겠지... 기도하는 맘으로 출발 하였다. 태국에서 갈아타고 프놈펜에 내리니 한성호 목사님(한국에서 선교사 파송 예배때 한번 뵙고 말씀도 나누웠음)이 마중나와 계신 것이 아닌가 얼마나 반갑고 기뻤던지.....

4시간 가량 버스를 탔는데 버스는 깨끗하고 상급이 었다. 남국의 밤을 버스를 타고 하나님의 오묘하고 신비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감사하게 되었다. 캄퐁솜(시하누크빌)에 있는 Golden Sea Hdtel에 방 배정을 받고 여장을 풀며 도착 예배 겸 저녁예배를 드리고 김은실 사모님께서 오셔서 일정표를 배부 해 주시고 점검하셨다. 난 2번의 어린이 설교를 준비 했는데...

4번이나 되었다. 각각 다른 곳에서 예배드리게 되니 반복 사용해도 된다는 말씀이 계셨다. 호텔은 타일 바닥에 깨끗하였다. 다른 곳을 다닌분들은 상류급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날씨는 우리나라의 8월처럼 온도가 높았고 시차는 우리보다 2시간 가량 늦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곳의 계절은 우기와 건기가 있단다. 지금은 건기여서 덜 덥단다 우기에는 가만히 있어도 덥단다. 농사도 날씨 때문에 1년에 한번 지을 수 밖에 없어 가난 할 수 밖에 없단다.) 다음날 아침예배 드리고 차로 미션 센터에 가서 아침을 먹었는데 쌀밥에 반찬도 내 입 맛에는 딱 맞았다. 아래층은 식당이고 2층 전체를 세 얻어서 사용하신단다. 부엌, 사무실, 목사님내외분방...

 

최재훈 목사님이 쓰실방이 있고 유치원도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영어공부 하는 방도 네 곳이나 되었고 영어공부는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서 무료로 가르치신단다. (한목사님께 스케치북을 말씀드렸더니 한권 주셨다. 최제훈 목사님이 그림을 그려 주시고 몇장은 박지수, 한송이, 김미순사모님이 같이 색칠해 주셨다.)

식사후 오냐행 교회를 향해서 출발 하였다. 남국의 야자나무, 집, 들,을 보며 달려서 교회에 도착 하였다. 조그마하고 깨끗한 교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이 예배 먼저 드리고 장년예배를 어린이와 같이 드리는데 조금은 산만했고 우리팀도 여러 가지로 이곳에서 처음이므로 잘 조화가 안되는 것 같았다. 이곳 사람들은 키가 작고 몸집도 작고 아주 작은 아이가 애기를 잘도 돌보아 준다. 저녁예배 겸 평가 시간에 많은 평가가 이뤄졌다. 오늘은 주체가 캄퐁솜이 었는데 내일부터는 주체가 선교팀이 하기로, 어른 예배와 어린이 예배를 따로 드리기로 결정 했다. 다음날(15일)은 보세몬 교회에 갔다. 어린이들은 어떤 집 아래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내가 착한 이웃에 대한 설교를 하게 되었다. 여자 신학생 세명이 나와서 어린이들과 찬양 율동을 하는데 매우 잘 하였다. 설교 시간이 되어 신학생들의 도움으로 배경화면을 들게 하고 착한 이웃에 대한 설교를 영어로 하는데 하다가 막혀서 원본을 보랴 시청각 교재 사용하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게 진행이 되고 땀이 뻘뻘나고 매우 힘들었다. 통역하는 보파씨가 잘 해줘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린이 들은 오전에는 예배보고 오후에는 학교갔다 온 아이들이랑 합해서 인원이 많아지고 게임을 하였다. 매우 재미있어 하고 열심이었다. 아이들은 크고 까만 눈동자가 빤짝빤짝 빛났다. 등치에 비하여 눈이크고 예쁘다. 애기들도 울어서 힘들어 본적이 없다. 여기 아이들은 울지 않고 잘 지냈다.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행상이 와서 언니가 뭘 사줘도 더 달라는 아이는 없다. 언니와 똑같이 나눠 먹고 만다. 더 사 달라고 떼 쓰는 아이도 없다.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생각케 했다. 우리도 가난하고 없었을 때 체념하고 지냈을까?

이곳에는 40대 이상의 남자 어른은 거의 없다. 내전으로 많이 희생되었단다.

가는곳마다. 조그마한 교회가 깨끗하고 아담하였다. 날마다 예정에 따라 잘 진행 되었다. 영어로 설교와 간증을 하면 신학생이 캄보디아어로 통역을 해 주었고 영어가 안되시는 분들은 우리말로 하면 한성호 목사님께서 영어로, 신학생이 캄보디아어로 통역을 하게 되었다. 영어로만하는 것은 잘 알아 들을 수 없어 난감하였다. 연세 많으신 김종도 전도사님의 특송은 듣는이의 마음을 감동 시켰다. 현지인들도 놀라는 눈치이다. 선교팀의 찬양율동은 아주 수준급이 었고 연습도 별로 안 한 것 같았는데 손발이 척척 잘 맞아 아주 보기가 좋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기서도 나타나는 것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작은 준비도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주위에 있는 것을 이용 하기도 했다. 주일날은 네팀으로 나눠 각각 다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난 정이자 전도사님, 한송이, 한성호 목사님과 같이 정꼭우교회로 가게되었다. 특송도 해야 된다고 하여 찬송가 209장을 목사님과 같이 연습도 하였다. 1,2,절은 캄보디아어로 1,절은 우리말로 하였다. 교회에 도착하니 어린이 찬송 중이었고, 신학생이 어린이 설교 누가 하느냐고 물어 본다. 원본은 없지만 내가 하겠다고 자청하여 하게 되었다. 원본도 없고, 시청각 교재도 없었지만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할 수 있어서 하나님 감사 합니다가 절로 나왔다. 정이자 전도사님의 어른설교가 아주 좋았고, 한송이 간증도 잘 하였다. 오늘 처음으로 만족스럽게 잘 지낸 것 같았다.

각 교회들은 생각 보다는 좋은 교회 건물들을 가지고 있었다. 주일날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되어 너무나 감사했다. 재개발 지역으로 묶인 오뜨레 교회에 가보니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가 건물이고 의자도 몇개 안되었지만 이곳에 주님이 함께 하시고 정부에서도 이곳의 예배와 글 가르친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뭘 도와줄 것 없느냐 한다니 더욱 이곳에 가 건물교회를 이끌어 오신 한목사님의 수고와 하나님의 섭리가 놀라울 따름이다. 오쁘람 성경학교에 가서 보니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 하심을 느낄수 있고 깨달을 수 있었다. 예배당, 교실, 기숙사, 주방,이 모든 것을 무료로 사용하고 공부도 무료로 시키신다니 한목사님 내외분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는 것 같았다. 신학생 성가대도 매우 잘 하였다. 이곳에서 캄보다아인이 한국말로 하는 찬송를 여러곡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세계 어느 신학교에서 우리말 성가대를 들을 수 있을까? 이곳 학생들은 공부도 할 수 있고 숙식도 다 해결되니 학생들 얼굴에 기쁨이 넘쳐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항상 싱글 벙글 이다. 왜 아니 겠는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와능력으로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하면서 주일날은 각교회를 섬긴다니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최제훈 선교사님이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 었으니 이 또한 어찌 아니 기쁜지...캄보디아는 언어가 한 언어란다. 선교하기가 다른 곳보다 쉬울 것 같다. 캄보디아 어느 곳에서 선교를 하던지 언어 때문에 어려움은 조금 덜 할 것이 아닌가? 사람들도 순진하고 하나님의 복음도 잘 받아 드릴 것 같이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가? 자연 환경도 너무 좋아 여기서 눌러 살고 싶은 곳이다. 이곳에서 선교 할 수 있는 최선교사님 가정이 부럽다. 최 선교사님 내외분, 영찬이 모두 이곳에 잘 적응하고 날로 날로 맘속에 기쁨이 넘치고, 주님만 사랑하며 잘 지내길 맘속으로 기도 드린다.

이 자랑스럽고 놀라운 사건을 남편과 아들이 어떻게 받아 드리고 느낄 것인가? 다음에는 아프리카를 갈 계획이라는 데 나는 꼭 가고 싶다. 하나님께서 보내주 실 것이라고 믿고 기도 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