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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캄.사모 한국방문. (2023.11.1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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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에 1차 방문을 하고나서 좋은 결과가 도출되어 2차를 계획했는데 후원자들이 금방 생기게되어 여권 만들고 초청장 의뢰하고 비자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7명이 한국대사관에 인터뷰를 갔고 김은실사모와 SreyPov도 같이 가서 방문 목적을 잘 설명해 인터뷰를 잘 통과하고 바로 항공권을 구입하고 부산에 은주자매가 추운 날씨라 패딩을 준비해주고 전장로님도 겨울잠바를 준비해 놓으셨다고하고 박원장님은 첫날숙소,저녁을, 소명교회에서 서울 이동 차량, 이렇게 각 방문지마다 방문 일정을 잡고 조율해나갔다.
비자문제, 오른 항공료, 추운 한국날씨, 내 몸이 한달째 아직 회복되지 않고있고, 여러 변수가 있지만 하나씩 해결되고 또 마침내 선을 이루리라.

사모들이 한국 여러교회와 유적지, 또 풍경과 산, 도시, 시골을 보며 몸 건강히 다니고, 돌아와서 많은 도전과 결단을 기대한다.

이번 여행 주제는 Mutual Cooperation & Reliance, 상호 협력과 의지. 즉,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고..

지속되고있는 우.러 전쟁, 또 갑자기 발발한  10.7 이.팔 전쟁.을 맞이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은 여타 나라보다 더욱 팽팽하다. 캄보디아는 우리에게 피난처가 될수있는 나라다. 거리도 멀지 않고, 식량도 많이 생산하고, 항상 따뜻하고, 한국에대해 호감을 갖고있고, 많은 한국선교사 선교센터가있고, 우리의 기술과 발전 경험을 필요로하고, 서로 win win 할수있는 조건들이 많다. 

특히 한국교회와 크리스쳔들은 방문하는 캄.사모와의 친밀한 교제를통해 미리 좋은 관계와 친구를 얻는 기회가되고 친구가 어려울때 도움도 줄수있기에 한국교회들에게도 이번 캄.사모 방문이 큰 의미를 갖는다. 

살다보면 내일 일을 알수가없다. 나의 부친도 논밭이 많고 넉넉한 집안에 살다가 공산당이 북한에 들어오니 19세의 나이에 동생과 빈손으로 밤에 임진강을 헤엄쳐 넘어와 구두딱기, 신문팔이 신세로 서울생활을 하시며 자수성가 하셨다.

전도서 11:1--2.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날후에 도로 찿으리라.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눠 줄찌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떠나기 3일전, 금요일, 비자가 모두 reject됨. 이에 긴급 메시지 전송.


비자가 전부 거부되었읍니다.
사모들 개인 통장에 잔고가 거의없고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한국에 가서 안돌아온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한국에 도움을 받을곳이 있을까요?이 사람들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내용을 appeal 하는 letter를 각 교회에서 한장씩 써서 저와 캄.한국대사관에 보내는 방법을 써야 할것같습니다.
이분들이 목회자 사모들이고 여러해동안 한국교회와도 교제해왔고 했다는 내용의 공식문서에 직인을 찍으셔서 오늘 4시까지( 한국시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샘플을보시고 융통성있게 작성하시면됩니다.
후원자 7명 이름도 넣어주세요 
감사합니다.

어제와 오늘 있었던 일

캄.사모 7명, 저희 부부 한국방문 항공권을 미리 사지 않았으면, 대사관에서 비자가 거부되었다고 어제 연락을 받았을때, 한국방문을 바로 포기했었을겁니다. 
통장잔액이 없어 한국에 가면 안돌아온다는 것과 후원교회와 이 여자들의 관계가 불분명 하다는것이 reject 이유였읍니다. 제가 생각해도 reject의 충분히 타당한 이유였읍니다.

어제 정오 12시쯤 reject 됐다는 연락받고 대사관이 오후 3시반까지 하는데, 점심시간빼고 2시간 반 밖에 시간이 없고.. 다음날은 토요일 휴무이고 우리는 주일밤 출국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항공권 대금도 다 날아가고, 한국 10여개교회 일정도 무산되고, 이제껏 모든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는데.. 하나님 뜻을 쫒아서 했다고 생각했는데, 내뜻이었나?.의심과 불안, 낙망이 밀려왔읍니다.

마지막까지 해보자 생각하고, 급히 청원편지 초안을 작성하여 10여개 한국 교회, 또 후원하시는 개인들에게 청원서를 부탁드렸는데, 한시간만에 두,세교회, 2시간만에 5개교회, 이렇게 교회 직인을 찍어서 청원서가오고, 그것을가지고 영사님과 통화했으나 힘들다고 하시고, 그래도 계속 청원편지가 10개 정도가 도착했고,

 그런데 오후 4시가 넘으니 대사관에 전화를해도 아무도 안받고 해서 이메일을 계속 대사관에 넣었읍니다.
10여개 한국교회의 귀국보증,  기도와 바람이 이루어지게 도와달라는 내용이었읍니다. 캄.사모들에게도 상황을 설명하고 기도를 요청했읍니다.

토요일 아침이되어 이메일을 확인하니 아무 답장이 없고 해서, 이제 항공권을 취소하고 얼마나 환불받으려고 여행사에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스라이빠오 자매가 인터넷에서 비자가 전부 나왔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나에게 연락해줬읍니다.
정말 날듯이 기뻤읍니다. 

마침 스바이리엉에서 십수년간 사역하시다가 kbs를 잠간 방문하신 박무디 선교사님과 짜빠게티를 먹으며
그분의 중요한 사역을 이야기하는 중이었읍니다.

또 아프리카 케냐, 라오스, 캄.라따나기리 등지에서 20 여년 선교하신 간호사출신 싱가폴 PuiMing선교사가 이제 연세도 있으셔서 은퇴를 하시고 싱가폴로 귀국하시기전 쓰시던 오토바이를 그멀리, 라따나기리에서 캄퐁솜에 가져와서 임광택선교사에게 주고, 같이온 제자들과 kbs에 어제부터 머물고계십니다.

모두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읍니다.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제 2차 캄.사모 한국방문 일정.

11월13일(월)  7:40am 인천공항 제 1 터미널 도착(Sky Angkor)--> 마포. 소명교회 -->양화진. 서울시내-->  숙소: YMCA 고양시국제청소년문화센터

14일(화) 고양>경복궁--> 서울역. 무궁화호14:48 출발, 조치원 16:17도착, 전웅환장로님, 김현 강도사님, 임지훈목사님과 저녁후 임지훈목사 차로> 오산 광은기도원숙박

15일(수) 광은기도원 성막견학 후 제천으로, 하늘누림교회. 수요예배

16일(목) 제천역. 무궁화호, 08:28출발>  신경주역 도착. 11:18분, 경주  유적지 ->금척교회->신경주역 ktx, 17:55출발, 동대구역 18:11 도착. 저녁식사후 대구신기교회 선교관.

17일(금) 신기교회 ->서남시장  주차장 11시 20분까지, 점심후 서일교회 ->청천교회후, 동대구역 ktx, 17:06출발, 부산 17:46도착, 식사후 (숙소.엘레브)

18일(토) 부산시내구경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김해 쉴만한교회 저녁 6시까지 도착.

19일(일) 주일예배(쉴만한교회), 오후예배후, 김성호목사님 차량으로, 4pm출발, 하동.아가페교회 .지리산. 구례, 임정열목사님, 산딸나무 숙박.

20일(월) 아침에 구례에서 광주, 증도(문준경기념관)  광주 오일교회

21일(화) 광주->안양역 7층. 점심.(조영길 목사님)->동대문 --> 남산->엘림교회

22일(수) 인천, 11:20am.Sky Angkor>캄보디아 프놈펜, 15:10 도착.

 

Please remember 10 Korean churches which sent appealing letters to Korean embassy for visa approval of 7 Cambodian ladies yesterday. 

1. SoMyong church in Seoul, Rev. JeonHaeil
2. Oil church in Kwangjoo, Rev. Lee HyeongHwan.
3. HaneulNurim church in Jechon, Rev. Lee TaeKyu.
4. Elim church in Seoul, Rev. Choi JaeHoon
5. MyongJee church in Daegu,  Rev. Go JinTae
6. Seo-il church in Daegu,  Rev.Kim DongUok
7. JooWon church in SeJong, Rev. Lim JiHoon
8. SooYoungRo church in Busan, Rev.Kang JungHoon
9. KeomCheok church in KyongJoo, Rev. Park DaeGeon
10. Dr. Park ByongEun, ChamPyonHan Clinic

Thanks Lord for their united spirit and quick action.
May God bless them.

 

11월 12일, 주일.
Pui Ming선교사 팀이 kbs 주일학교예배를 참관하고 우리와 같이 예배를 드렸다. 20년동안 케냐,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선교한것을 간증했다. 케냐에서는 거의 10년을 마사이족 마을 선교 병원에서 간호사로 섬기고, 라오스에서 1년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9년가까이 있었다. 라따나기리 소수민족 짜라이족 마을에서 원주민과 같은 집에서 생활하고 초등학생에게 영어도 가르치고 복음을 전했다. 세상의 오지 지역에서 그들과 같은 생활을하며 오랜기간을 주님을 섬겼다. 이제 사역을 마치고 싱가폴로 돌아가기전 kbs를 제자들과 같이 들렸다.
예배후 짐을챙겨 공항에와서 7명 캄보디아 사모를 만나 수속을 마쳤다. 못갈뻔한 여행을 하게되니 신기하게 느껴진다. 짐을부치고 보딩패스를 전부 받으니 그 비자 사건이 다시 떠오른다. 비자 거부로 인해 무용지물이되어 사라질뻔한 항공권이 다시 부활된 느낌이다. 더 귀중한 티켓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 것이다. 우리 인생도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지면에서 사라질뻔한 목숨이 예수님으로 인해 구속되고 더 새롭고 귀중한 생명이 된것과 마찬가지다.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은혜로운 티켓, boarding pass...
더욱 귀중한 여행을 만들어야겠다.

 

11월 13일.
인천에 도착하니 아침 날씨가 3도라 했다. 공항 출국장으로 나오니 소명교회에서 패딩을 가지고 우리를 마중나와있었다. 캄. 사모들이 오면 한국의 추운날씨를 견디기 힘들것이라고 부산의 은주자매가 수영로교회 아기엄마들과 친구의 도움을 받아 가벼운 새 패딩 8개를 사서 서울 소명교회에 미리 보내놓아서 공항으로 가져와 바로 따뜻한 옷을 입게되었다. 소명교회로 가서 전열을 가다듬고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로갔다. 전목사님 사모님이 동행했고 설명에 모두 감명을 받았다. 한알의 밀알이 떨어져 오늘날 한국 교회와 국가에 큰 열매를 가져온 이들의 희생. 1세 미만 영아들의 무덤도 보고, 열악한 환경, 풍토병으로 죽어간 어린 아이들, 또 절두산, 단두대, 목을 치던 큰 칼. 날씨는 추웠지만 정신은 더욱 또렸했다. 홍미자매가 꽃을 가져와 한송이씩 선물했다. 연세대학교로 가서 언더우드 동상에서 정문쪽으로 걸었다. 학교 규모가 커서 어떤 사모는  앙코르왓 같다고 말한다. 저녁은 박병은 원장. 부인. 가족이 우리를 접대해주었다. 이번 사모 방문에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소명교회 식구들, 우리 일행 모두 기쁨이 충만했다. 추운 하루였지만 훈훈하고 즐거운 교제였다.

 

11월 14일
아침 일찍 이상범 목사님이 광명에서 차를 가지고 오셔서 우리 큰 짐을 싣고 오산 광은 기도원에 갔다 놓으셔서 우리는 송간사님과 단촐하게 창경궁으로 향했다. 한복집에서 전영주.김한나 자매도 만났다. 총신 유아교육과에 재학중 kbs에 선교를 많이 담당했었는데 이제 40대 중년이 되어 만났다. 날씨가 풀려 얇은 한복에도 모두들 기분좋게 고궁을 마음껏 즐기며 홍미 자매의 코치로 다양한 포즈로 사진촬영을 했다. 그들 일생에 가장 즐거운 날인듯 마음껏 고궁을 날아다녔다. 이 사모 부대가 가는곳 마다  모든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서울역으로 가서 햄버거를 먹고 기차를 타고 조치원에 가서 전웅환장로님. 임길빈 권사님. 김현 강도사님, 임지훈 목사. 홍민 자매를 만나고 좋은 옷 한보따리씩 받았다. 가방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짐은 늘어나고 벌써부터 신경이쓰인다. 임목사 차로 오산 기도원에 저녁늦게 도착하니 이상범 목사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방을 안내해 주시고 다시 돌아가셨다. 우리의 여행을 편하게 해주시려 연세가 많으신데도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다. 씻고 핸드폰을 켜니 화면이 뜨지않는다. 드디어 고장이다. 또 어찌 되겠지.

 

11월 15일
아침 일찍 이상범 목사님이 오셨다.
제1차 사모방문때 처럼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가 새겨진 큰 돌 앞에서 그 문구를 큰 목소리로 암기하게 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있게한 금지옥엽같은 구절이고 또 캄보디아도 부흥시킬 보석같은 문구이다. 김선교사와 사모들은 성막 강의에 참석하고 나는 이목사님과 핸드폰 수리점에 갔다. 강의는 캄.언어로 김선교사가 통역을 해야해서 1시간 더 길어졌지만 사모들은 큰 유익을 받았다.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성막 실제 사이즈 모형을 보니 잘 이해가 되었으리라. 오목사님도 오셔서 차 두대로 제천 하늘누림교회로 가서 임장로님 댁에서 한식으로 대접받고 수요예배에서 사모들이 특송을하고 나는 전도서 11장 1절 말씀으로 지금은 마음껏 빵을 물에 던져야 할 시기이고 나중에 다시 돌려받을 것을 믿어야하고 일곱, 여덟 방면으로 광범위로 도움을 필요로하는 모든곳에 도움의 손길, 말씀전파의 손길, 의료 구제의 손길을 펴야함을 이야기하고  캄.사모들이 단순히 한국 여행온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와 친밀한 교제를 통해 나중에 한국이 재앙을 맞이할때 이들이 빵을 돌려주되 후히 갚을것이기 때문에 복덩이임을 알렸다. 그리고  에레미야서 4장 19절 말씀으로 이제 한국도 전쟁을 대비해야 함을 전했다. 이.팔 전쟁에서 파티를하고 축제를 할때, 평안하다 할때  갑자기 사태가 벌어지고, 건물, 차, 비지니스는 모두 부서지고 리어카에 짐을 싣고 정처없이 떠나야하는 때가 한국에도 곧 올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말세를 준비하고 사태가 터지면 매유얼 대로 바로 처신해야 험을 강조했다.

 

 

 

11월 16일
제천에서 일찍 역으로가서 많은 짐을 무궁화호에 실고 넓찍한 좌석에 앉아 3시간을 달려 신경주역에 도착해 마중나온 처제. 은주집사와 두 친구분 만나서 금척교회 차로 박대근 목사님이 운전해 여러 능들을 보고 천마총 안에도 들어가 보고 불국사를 보았다. 천년 고도에 여기 저기 흩어진 큰 능들 그 속에는 죽음과 죽음이 가져간 유물.보물들.. 인간은 욕심장이다. 살아서도 소유하고 죽어서도 소유하고 싶어한다.
금척교회에 들러 캄보디아 찬송 두곡을 녹음하고 서둘러 역으로 가서 일부 짐은 은주자매가 부산으로 가져가주어 수월하게됬다.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리니 비가 오고있고 목사님과 장로님이 차를 가지고 오셔서 식사하고 신기교회로 가서 특송을했다. 오늘도 이른 아침 짐을 꾸려 차에 싣고 내리고, 기차에 싣고 내리고, 또 역에 보관하고 찿고, 계속 몇번을 했다. 
짐이란 무엇인가? 

마음의 상처, 불만,욕심, 불필요하게 쌓은 재물, 인생은 단촐할수로 움직이기도 좋고 더 많은 것을 보고 즐길수 있는데..

 

 

11월 17일
나는 선교관에 자고 새벽에 기도회에 가니 20명정도가 기도하고 있었다. 아침에 청천교회를 찿아갔다. 내가 97년 파송되던 해부터 조목사가 꾸준히 오랜 세월 후원을 해주었다. 거기서 서남시장에 가서 서일교회. 서대구교회 목사님 두분과 몇분을 만나 라면.오뎅.떡국.김밥.순대등을 먹으며 교제하고 서일교회 재건축 현장을 보고 서문시장 구경을 하면서 운전해주시는 진집사님 점포도 둘러봤다. 몇해전 화재로 점포가 모두 불타고 또 암이 발생하고 큰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다한다. 이제는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자족하며 사는 법을 배우셨다고했다. 동대구역으로 와서 또 많은 짐을 올리고 내리고.. 그래도 이번에는 힘센 사모들이 많아 나는 별로 힘을 안쓴다. 부산에 내리니 대구보다 더 춥다. 내일은 더 춥다고한다. 은주자매, 은주 언니부부, 강목사님, 돕는 손길이 많아 부산 일정이 수월해졌다. 차안에서 시내 야경을 보며 해운대에 와서 뜨끈한 대구탕을 먹고 나는 몸살 기운이 있어 먼저 투숙하고 일행은 수영로교회 금요밤 기도회에갔다. 캄보디아어로 통역도 해준다고한다. 피곤하면서도 재미있고, 빡빡하면서도 볼것은 다보고 가야할 곳은 다 가보고..시간이 빈 틈이 없다. 차를 타면 이야기하고, 깔깔거리며 웃다가 또 모두 자고, 또 내려서 먹고..도우시는 분들을 놀랍게 적시에 보내주신다. 캄.사모 덕분에 우리도 호강한다.

 

11월 18일
여러 지방에서는 때이른 눈이 내렸다고 한다. 부산에도 밤새 조금 왔다고하나 눈은 보이지 않는다. 강정훈목사님이 청년들과 트럭과 차를 가지고 오고 은주 자매도 왔다. 강목사님은 대구 서문교회 대학부때 캄보디아에 두.세번정도 캄퐁솜과 꼬꽁으로 단기선교를 왔었는데 올해 1차 캄.사모 한국방문때 은주자매를 통해 부산에서 만나 이렇게 큰 도움을받게됐다. 해운대 더베이로 가서 조식하고 높은 빌딩들과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찍고 이숙애목사님이 송도에서 케이블카를 태워주고, 또 자갈치시장.국제시장 추운데 걸어다니며 구경했다. 저녁을 먹으며 그 한국 회원들과 교제를 하고, 사모들의 감동과 다짐을 듣고, 캄.사모 한국 방문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전도서 11장 1절, 예레미아 4:19 에서, 지금은 우리가 물에 빵을 던지나 나중에는 캄.사모들이 우리에게 복을 돌려줄것이고, 그리고 우크라이나, 이스라엘전쟁에 이어 다음 전쟁의 alarm 소리와, trumpet 소리를 한국교회는 들어야  함을 이야기했다. 목사님과 청년들이 김해 숙소까지 우리를 태워주었다. 날씨는 쌀쌀하나 그들의 배려와 수고가 따뜻하다. 가는곳마다 사랑의 빚을 진다.

 

11월 19일.
쉴만한 교회에서 아침을 먹고 11시 예배를 드렸다. 예배당을 부산에서 김해로 옮겨 성도님들이 부산에서 오신다. 이지영목사님이 담임하시고 올해 79세임에도 뚜렸한 비젼을 가지고 추진력이 대단하시다. 정말 끈끈한 결속력으로 성도들이 뭉쳐있음을 느낄수있다. 오후예배때는 캄.사모의 특송에 이어 이번 캄.사모 한국방문을 특별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을 두가지로 설명했다. 전도서 11장 1절, 빵을 물에 던질 때가 있고 또 그것을 돌려받을 때가 있음을 설명하고, 예레미야 4:19의 trumpet sound와 alarm of war를 현 세계상황에 비추어 설명했다. 
부산에서 70이 다되신 김성우목사님이 차를 가져오시고 싱글로 지내시는 52세 정반석 강도사님 차로 하동에 도착해 큰빛교회로 가서 경기도에서 목회하시다 은퇴하신 최동환목사님과 큰빛교회 담임목사님을 만나 준비해놓으신 비빔밥과 호박죽을 맛있게 먹고 특송을 하고 잠시 방문 이유를 설명하고 다시 차 두대로 밤길을 달려 구례로 가서 산을 한참 올라가 지리산 정원, 숲속가옥에 가서 두 가옥에 나누어 잤다. 제법 큰 지역을 계발해 많은 단독주택형 가옥과 테마 건물과 조경을 해놓았다.
운전해주신 두분도 광주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시기로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정이다. 지리산 부근이라 공기가 좋고 밤늦게까지 남자 3명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11월 20일 
아침 일찍 방에서 컵라면을 먹고 산을 내려와 많은 산들을 보며 고속도로를 달려 광주오일교회로 가서 이형환 목사님 만나고 짐은 모텔에 내려놓고 증도로 가서 염전, 각종 채소밭, 갯뻘등 남도의 독특한 풍경을 감상하고 짱뚱어탕과 게장으로 식사하고 문준경전도사 기념관에 가서 그녀의 일대기를 담은 비데오를 보고 일년에 고무신 9 켤레가 닳도록 전도 다니신 신안군의 섬들, 100여개 교회를 세우시고, 귀신을 내쫒고, 나중에 한국교회에 기둥같은 목사님들을 세우시고, 17세때 결혼하여 첯날밤부터 남편에게 버림받고, 삯바느질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40세에 신학하고, 신안군 온 섬을 전도하고, 1950년 육이오가 발발하고, 그해 60세의 나이에 공산주의자들에게 증도 해안가에서 믿는자의 씨암탉이라고 죽창과 권총으로 무참히 살해당하신 신안군의 믿음의 어머니.
이와같이 한 여인이 주를위해 한알의 밀알이 썩어질때 그 열매가 엄청났던것 처럼 이 여인을 본받자고 했다. 그분이 죽임을 당했고 묻혀있는 곳을 방문해 각자가 다짐을하고 일몰의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찿집에서 사진찍고 광주로 돌아왔다. 오늘은 김은실 선교사 생일이라 이목사님이 치즈케잌을 사오셔서 모텔방에서 happy birthday 를 같이 불렀다.

 

11월 21일
아침 일찍 광주 버스 터미널로 왔다. 광주를 방문할때마다 이곳에서 이목사님의 배웅을 받았다. 전국 어느 도시보다 자주 방문하게된 광주는 이목사님의 사랑때문이다. 
내년 3차 캄.사모 한국방문을 하게된다면 한국 교회 사모님들과 같이 3일정도 세미나를 압해도에서 할까 생각해본다. 한국 사모님들이 한 session씩 맡아 진행하고 인근의 퍼플 섬, 천사대교, 문준경기념관, 갯뻘체험등을 방문하며 교제하면 좋을것같다. 한국 사모님들의 다양한 체험과 간증이 캄.사모들에게 큰 격려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안양에 도착하니 이상범목사님이 또 차를 가져오셔서 우리 짐들을 도봉산 인근의 숙소로 옮겨 주셨다. 이번 여행에서 벌써 몇번의 장거리 운행을 도와주셨고 내일 공항 갈때도 도와주신다. 연세가 70 이신데 우리 많은 짐들을 미리 같다놔 주시니 덕분에 우리의 여행이 편하지만 죄송스럽다. 안양에서 조영길목사님 일행과 식사교제를했다. 조목사님은 지금 82세로, 10여년전 우리 캄퐁솜 시내 선교관에서 한달여간 같이 지내셨다. 백석대학교에서도 오랬동안 가르치셨고 지금은 성경을 전체적인 파노라마 관점에서 목사님들에게 가르치신다. 사모님과 여러목사님이 같이 오셔서 식사를 하며 이야기했다. 10여년전 김인성선교사를 우리에게 소개하셨고 김선교사는 지금 캄퐁츠낭에서 초등학교 사역을하고 중학교 건물도 완공했다.
거기서 전철로 동대문에 내려 캄.사모들은 가족을위한 선물들을샀다. 그동안 여러군데서 용돈을 받았다. 소명교회 전목사님 사모님이 나오셔서 동대문에서 물건구입하는데 많은 도움을주셨다. 다시 전철을 타고 쌍문역에서 최재훈목사님을 만나 유부야 센터에 와서 모임을 가졌다. 2000년도 초부터 매년 총신 유아교육과 선교팀을 이끌고 방학때 10회 정도 kbs에서 사역하셨던 정갑순교수님과 kbs에서 6개월정도 사역했던 김한나 자매를 만났다. 정교수님은 은퇴후 중국에서도 6년정도 사역하셨고 이제 거의 팔순이되셨다. 지난 사역 이야기들을 했는데 기억력이 대단하게 정확하시다. 그당시 매번 단기선교 나올때마다 20명 정도가 왔는데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해오고 여러가지 시청각.그림. 자료들을 많이 가져와서 사역을 하고갔다. 유아교육과에서  단기선교를 나올때 개인이 재정 부담을 얼마하고 나머지 많은 부분은 평안교회 황보권사님과 그리고 다른 권사님들이 나머지 비용을 부담하셨다고 한다. 15년정도 서로 못만난것 같다. KBS 선교초기에 많은 부분을 담당해 주었던 총신 유아교육과, 또 6개월, 1년씩 남아 선교를 도운 김한나, 전영주, 최선화, 자매들, 또 그것을 총 지휘하시던 정갑순교수님, 황보연옥 권사님. 모두 고맙고 생생한 이름들이다. 이곳 엘림교회, 주사랑교회, 반도생명교회, 세교회가 연합하여 이곳 창동에서의 우리 일행의 숙박, 저녁, 차량을 담당해 주셨다. 세 교회 목사.사모 모임을 매주 가지고 모든 일을 연합으로 해 나가신다고했다. 최목사님 가족은 20 여년전 캄퐁솜 kbs에서 우리와 같이 3년간 같이 사역하셨다. 그때 영찬이는 3살때 왔었는데 이제 군에 갔다오고 대학 졸업반이다.
선교와 함께 우리의 세월도 흐르고 이제 나이가 들어 만나니 인생이 잠깐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천년을 살아도 뒤돌아보면 잠깐이라고 고백하리라.
그래서 영원이라는 시간을 만들어 놓으시고 그속에서 염려없이 마음껏 시간을 사용하라고 하신 하나님. 
이것이 최고의 축복이다. 열흘동안의 시간이 초고속으로 지나갔지만 이 아름답고 놀라운 경험은 천국에서도 영원하리라.

 

11월 22일.
아침 일찍 이상범목사님이 차를 가지고 광명 흰돌교회에서 오시고 엘림교회 최재훈 목사님이 차를 렌탈해 오셔서 두대로 공항으로 가서 수속하고 23키로가 넘은 초과 짐을 빼서 hand carry 하고 bye bye 했다. 열흘간 모두 수고했고 모두 전심으로 도와 주셨다. 하나님이 모든것을 기억하시고 갚으시길 바랄뿐이다. 
캄.사모들도 대한민국의 모든 풍경, 인심, 사랑, 도시, 사람들을 그들의 영혼의 카메라에 담아 두고두고 기억하리라. 
우리는 서울역에 와서 황원복 장로를 만나 사이판에서 같이 살던 이야기, 한국생활, 교회, 자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94년도에 싱가폴로, 장로님은 95년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이판 예손교회에서 같이 집사로 섬겼고 재정도 담당했었다. 둘다 한국에서 아파트를 팔아 사이판에 큰 꿈을 꾸며 들어왔는게 둘다 빈털털이로 나왔다. 사이판은 영적, 육적 훈련장이었다. 장로님은 인테리어쪽으로 사업을해서 자리를 잘 잡았다.
 김은실선교사는 부산으로 내려가고 나는 엘림교회 수요예배에 참석하여 전도서 11장 1--2절 말씀과 예레미야 4:19, 말씀으로 동일하게 빵을 물에 던질것과 다시 찿을것, 전쟁에 대비하여 즉시 떠날수있는 단촐한 체계를 갖추며 일상생활을 해야함을 강조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는곳마다, 기회가 있을때 마다 이 메시지를 전할수있도록 기회를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